중동환자가 한국에 오면 벌어지는 일 [아랍인은 내 친구]

입력 2022-05-17 09:47   수정 2022-05-17 11:14



[한경잡앤조이=최예슬 하이메디 매니저] 한국을 찾는 중동인 환자 대부분은 중증 환자로 1인당 평균 진료비가 매우 높고, 장기 체류, 가족단위 이동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 외에 이슬람교를 믿는 그들은 문화와 종교적 색채가 강해 그들을 파악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기 십상이다.

진료실에서도 온 가족이 함께하는 중동인
중동은 가족 중심 문화가 강해 치료를 위해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도 거의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 움직인다. 평균 4명의 가족이 함께 오지만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13명의 가족이 함께 오는 것도 눈으로 목격했다. 보통 진료실에는 환자와 주 보호자 한 명 정도만 들어가는 우리와 달리 중동은 온 가족이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교수님과 레지던트 선생님, 간호사와 통역사 그리고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 찬 진료실은 정말 정신이 없다. 많은 인원이 의료진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 주면 좋겠지만, 보호자들이 너도 나도 한마디씩 보태고 거기에 통역까지 더해지면 진료 시간이 예정보다 한참 길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너무 많은 가족이 들어온 경우에는 조심스레 일부 가족은 나가서 기다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남자 의료진은 노크 후 5초 후에 들어오세요
무슬림 여성들은 가족 외 남성에게 히잡을 벗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그래서 수술을 받을 때에도 히잡을 쓰고 수술실 바로 앞까지 이동해 수술 직전에 수술 모자로 바꿔쓰고, 수술 직후 회복실에서 다시 히잡을 쓴다. 환자의 히잡을 챙겨 회복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전달한 적이 있는데, 수술이 끝난 직후라 몸이 많이 아플 텐데도 히잡을 공들여 쓰는 모습이 정말 놀라웠다.

이런 문화적 특성을 몰랐던 시절에는 남자 의료진이 무슬림 여성이 있는 입원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입원실 문에 ‘남자 의료진은 노크 후 5초 후에 들어오세요’라는 문구를 붙여 히잡 쓸 시간을 충분히 준다.
지금은 한국 의료진들도 무슬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의료진이 기도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입원실 문 앞에 무슬림 환자들의 경우 기도 시간을 붙여두고, 코란을 선물하거나 끼블라 (무슬림이 기도를 하는 방향)를 표시해 주기도 한다.

한없이 여유로운 사람들
대부분의 중동 환자들은 걸음걸이에서도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좋게 말해 여유롭고 느긋한 성향이지만, 약속 시간을 제때 지키지 않아 애가 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외래 진료가 있는 날은 중동 환자의 숙소로 차량을 보내주는데, 제시간에 타는 분들이 고마울 만큼 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예약된 외래 시간에 늦을 때가 많은데, 마지막 외래 시간에 늦는 경우에는 의사들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통역사들이 진료실 앞에서 환자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있고, 100m 달리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웃기고도 슬픈 사실은 환자를 재촉해서 진료실까지 달리기를 하다 보면 환자는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고 나만 열심히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도 마지막 외래 시간을 맞추지 못해 교수님이 퇴근해버린 경우도 있고, 퇴근하고 있는 교수님을 붙잡고 간단하게 진료를 본적도 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 매번 늦는 환자에게는 일부러 외래 시간을 훨씬 더 일찍 안내하기도 한다.



누가 내 식판을 옮겼을까?
중동 사람들은 우리처럼 삼시 세끼를 다 먹지만 점심시간이 우리보다 조금 늦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심을 12시~1시 사이에 먹지만 그들은 보통 2~3에 점심 식사를 한다. 그래서 입원 환자에게 12시에 아침을 제공하면 먹지 않고 그대로 뒀다가 2시간 정도 후에 식사를 한다. 한 번은 중동 환자의 이런 특성을 모르는 식사 담당 직원이 식사를 하지 않는 줄 알고 식판을 치워버렸는데, 자리를 잠깐 비웠던 환자가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는데 자기 밥이 없어졌다”라며 노발대발한 적이 있다.

이 사건 이후에는 식사를 치우지 말라는 내용이 적힌 종이를 환자에게 주었고, 직원에게도 식판에 이 종이가 올려져 있으면 절대 치우지 말아 달라고 전달했다.

우리와 다른 점만 이야기했지만 비슷한 점도 많다. 가장 유사한 부분은 한국인 못지않게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것. 처음에는 경계심이 강하지만 한 번 신뢰를 쌓고 나면 가족만큼 애정을 주는 사람들이다. 형제, 자매라 부르며 실수도 감싸주고, 가진 것도 나눠주는 그들. 그래서 환자와 담당 직원으로 만났지만 친구 이상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정 많은 그들 덕분에 오늘도 중동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최예슬 씨는 우연히 시작한 아랍어에 빠져 아랍을 사랑하고, 사람 만나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다. 5년 전 외국인 환자 유치 스타트업 하이메디에 입사, 현재는 구독자 17만 명의 중동 전문 유튜브 ‘하이쿠리’를 기획, 촬영,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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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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